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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10년 근속에 1억 벤츠 받아…치어리더 박기량이 밝힌 반전 과거

15년 경력의 치어리더 박기량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기울인 노력을 전했다.박기량은 지난 19일 방송된 티캐스트 E채널 ‘노는언니2’에 출연해 치어리더 데뷔부터 팀장이 되기까지 겪은 본인의 이야기를 밝혔다.박기량은 “어렸을 때는 가수를 꿈꿨지만, 연예인은 서울 사람만 되는 줄 알았다”며 “고등학생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우연히 치어리더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치어리더로 활동하며 신문에 처음 실리기도 하고, SNS로 많이 알려지면서 방송국에도 가보게 됐다”고 덧붙였다.이어 “원래 춤을 잘 췄냐”는 질문에 박기량은 “옛날에는 춤을 정말 못 췄다”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악착같이 연습했다고 밝혔다.그는 “제 롤모델인 팀장님처럼 추고 싶어서 차가 끊길 때까지 연습했다. 딸기 우유와 빵만 먹고 연습했다”고 했다.그는 “짧은 시간 연습하고 바로 겨울 시즌에 투입됐다”며 “고등학생이던 2007년 데뷔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무던한 노력 끝에 치어리더라는 직업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한 박기량은, 최근 소속사로부터 10년 근속 선물로 외제 차를 받았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박기량이 소속사 알에스이엔티로부터 받은 차량은 벤츠 ‘GLE400d’로, 1억 원대 쿠페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앞서 지난 8월31일 박기량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박기량TV’를 통해 차량 출고 영상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알에스이엔티 측은 “박기량에게 차를 선물한 이유는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한편 박기량은 2007년 프로농구팀 울산 모비스의 치어리더로 데뷔해 2009년 롯데 자이언츠 소속 치어리더로 활동했다. 지금은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와 프로배구단 삼성화재 블루팡스, 프로농구단 서울 SK 나이츠에서 치어리더로 활동 중이다. 장구슬 기자 jang.guseul@joongang.co.kr 2021.10.20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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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치어리더의 역사③ 치어리더 3대장을 아십니까

한국 치어리더의 역사는 프로야구 역사보다 더 길다.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1975년 창단할 당시 응원단 '롯데 엔젤스'를 만든 게 최초의 치어리더 팀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롯데 엔젤스는 현재의 치어리더와 달리 '고적대'와 비슷한 구성이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도 '치어 걸'은 있었다. 하지만 대학 응원단 출신이나 춤을 잘 추는 그룹사 직원들이 파트타임으로 참여하는 수준이었다. 치어리더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다. 야구장에서 팀을 상징하는 유니폼을 갖춰 입은 치어리더들이 응원단장과 함께 관중 응원을 이끌었다.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한 뒤엔 실내 코트에서 미국프로농구(NBA)처럼 화려한 율동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1998년 프로농구 오리온스에서 치어리더를 시작한 노숙희 팀장은 "프로농구 출범 이후 치어리더들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유명 치어리더'도 등장했다. 고지선(SK), 송주현(LG), 박채경(삼성) 치어리더는 수천명이 넘는 팬카페 회원이 생겼다. 치어리더들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린 건 2010년대부터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프로야구 인기가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치어리더들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2세대 치어리더 대표 주자는 단연 박기량(30)과 김연정(31)이다. 2007년 치어리더를 시작한 박기량은 큰 키와 춤 실력, 높은 인지도를 얻어 '스타 치어리더'로 떠올랐다. 현재 소속사 RS ENT 팀장인 그는 무려 13년째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치어리더를 시작한 '경성대 전지현'으로 유명해진 김연정이 롯데에 합류한 2012년부터는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팬들은 2013년 데뷔한 이수진 치어리더까지 세 사람을 묶어 '야구장 3대 여신' 혹은 '치어리대 3대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야구장 밖으로 나가 방송 출연, 광고 모델 등 연예계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최근엔 '신(新) 3대 여신'도 등장했다. 안지현(롯데), 서현숙(두산), 김진아(KT)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사진 기사'와 '직캠(직접 촬영한 영상)'이 인기를 누리면서 지명도가 높아진 케이스다. 세 사람 외에도 이나경, 김한나, 박현영 등 유명 치어리더들이 등장했다. 김효경 기자 2021.09.24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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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치어리더의 역사② 화려함 뒤 그림자… 처음엔 '열정 페이' 불가피

'직업'으로서 치어리더는 어떤 위치일까. 억대 연봉을 받는 스타도 있지만, '열정 페이'도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구단들은 대개 치어리더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이벤트 회사와 계약을 하고, 이벤트 회사에서 치어리더들과 계약한다. 16년 경력의 노숙희 팀장은 1998년 '놀레벤트'와 계약해 농구단 오리온스를 거쳐 2000년에 삼성에서 응원을 시작했다. 은퇴 이후엔 같은 회사에서 치어리더 관리, 행사 진행 등을 맡고 있다. 박기량 롯데 팀장은 "열정이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처우 때문이다. 대부분의 치어리더는 경기당 수당을 받는 형태로 계약한다. 신입들은 경기당 15만원 수준이고, 경력이 늘어도 두 배 수준을 넘지 못한다. 보통은 홈 경기 위주고, 로테이션 형태로 근무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겨울에는 농구장과 배구장에서 '투잡' 또는 '스리잡'을 하는 게 필수적이다. 보통 5~6년차의 연수입이 3000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팀장급이 되면 고정 월급을 받거나 인센티브 계약을 하기도 한다. 행사나 이벤트도 수입원이다. 최근엔 대외 활동에 늘어났고, 인기가 많을수록 몸값이 올라간다. '억대 수입'이 가능해진 이유다. 다만 최근엔 코로나19로 행사가 줄어들어 인터넷 방송을 하거나 피팅 모델 등 부업을 병행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치어리더가 되는 방법은 아이돌 그룹과 비슷하다. 대행사에서 오디션을 보거나, 길거리 캐스팅된 사례가 많다. 노숙희 팀장은 "보통 키 170㎝ 정도는 되어야 한다. 당연히 마른 체형을 선호한다. 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종의 '연습생' 기간을 거치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한 달에서 3개월 정도로 짧다. 무대 경험을 쌓으면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데뷔'할 수 있다. 이수진 삼성 팀장은 "화려해 보이지만 정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라떼는'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요즘엔 의지가 부족해 금세 그만두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치어리더가 인기있는 건 무대 위에서 느끼는 쾌감 때문이다. 박기량 팀장은 코로나19로 응원이 중단됐다 복귀한 지난해 "너무나 무대가 그리웠다. 몸은 힘들지만 팬들 앞에서 응원을 이끌면 엄청난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다. 배수현 SSG 팀장은 "팬들이 열광하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이 일을 하길 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2021.09.24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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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치어리더의 역사① 삼성의 '신-구' 대표 노숙희-이수진이 말하는 응원, 치어리더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멋진 광경은 음악에 맞춰 팬들이 하나 되어 응원하는 모습이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뛰는 메이저리그, 100년이 넘는 일본 야구에서도 볼 수 없는 K-베이스볼만의 매력이다. 그 중심엔 치어리더가 있다. '야구장의 꽃'을 넘어 이제는 전문직업으로 자리 잡은 치어리더.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삼성 치어리더 '블루팅커즈'를 만났다. 1990년대 말부터 활동을 시작한 1세대 치어리더 노숙희(40) 팀장과 2세대 대표 치어리더 이수진(29)가 창간 52주년을 맞은 일간스포츠를 위해 함께 단상에 섰다. -두 분이 함께 무대에 서신 적이 있나요. 노숙희(이하 노): 처음이에요. 제가 2012년에 그만두고, 수진이가 삼성 라이온즈에 들어왔거든요. 이수진(이하 이): 저는 2013년에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쭉 삼성에서 했으니까 10년째네요. 노: 지금도 같은 회사(놀레벤트)에 있으니까 매일 보는 사이죠. 지금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노: 저는 미용 전공이라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동성로에서 스카우트됐죠. 사실 어떤 일인지도 몰랐는데 "치어리더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대학을 다니면서 해볼까'라고 고민하다 계속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배영수 코치(두산)와 입단동기(2000년)라구요? 노: 네, 맞아요. 그 얘기를 아직까지 듣죠.(웃음) 이: 저는 모델 전공(대경대 모델과)이라 무대에 서는 게 익숙했어요. 그런데 런웨이에 서는 게 지루하게 느껴졌어요. 지인에게 "무대에서 춤을 추고 싶다"고 했는데 야구를 좋아해서 치어리더를 추천하더라고요. 때마침 면접 공고가 났고, 합격했죠.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일했습니다. 노 : 13년을 하고, 치어리더는 그만뒀지만 20년이 넘었네요. 2017년부터는 치어리더 팀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회사에서 저보다 길게 일한 사람은 이제 4명 정도? 삼성은 이제 가족 같아요. 이 : 저는 10년째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이제는 (삼성 라이온즈가)애틋한 존재죠. -치어리더의 수명이 길어졌죠. 노 : 저만 해도 해마다 고민했어요. 나이가 들면 회사에서 "그만 하라"고는 안 해도 "내가 그만두겠다"고 해야 하나. 지금은 결혼하고도 계속할 수 있고, 자기 관리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좋아졌죠. 이 : 저는 언니가 그만두고 나서 시작했는데, 별생각이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이고 팀장의 위치가 되니까 부담도 생겨요.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되죠. 자기 관리 없이는 오래 할 수가 없어요. 노 : 나중엔 수진이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을까요(웃음). -직업병도 많다고 하던데요. 이 : 저는 지금까지 딱 두 번 쉬었어요. 진짜 아파도, 티를 안 내죠. 한 번은 출근했는데 너무 몸이 안 좋았는데 단상에 올라가겠다고 했더니, 언니가 '제발 쉬라'고 하더라고요. 노 : 수진이는 정말 무대에 오르면 다른 사람이 돼요. '못 하겠다'면서도 비 맞으면서 공연을 하더라고요. 이 : 사실 무릎이나 발목이 안 좋은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전 춤출 땐 안 아파요. 무릎 연골 닳을 때까지 하고 싶은데, 사실은 몇 년 동안 숙희 언니에게 "저 올해까지만 할게요"라고 하기도 했어요. 다행히 아직까진 크게 몸이 상하지 않아서 하고 있어요. -예전과 팬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죠. 노 : 요즘엔 응원단과 함께 관중들이 일어서서 응원하잖아요. 이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 참 오래 걸렸어요. 동작을 따라 하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었죠. 응원단상을 향해 라면, 떡볶이, 술병을 던지는 게 일상이었으니까요. 이 : 제가 시작할 때만 해도 취객들이 '너희가 응원 못 해서 졌다'고도 했어요. 야구장이 무섭기도 하고. 지금은 그런 분들보다 "고생했다"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더 많죠. 노 : 팬분들이 편지를 써서 주시기도 해요. 결혼식까지 찾아준 팬도 있어요. -치어리더가 각광받는 직업이 됐죠. 노 : 예전보다 경쟁률이 높아졌어요. 학생들은 밤에 와서 연습하기도 하고, 하고 싶어도 못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야구장에서 만나거나, 전화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죠. 다만 단상에서 예쁜 모습이 전부는 아니에요. 이 : 하루 하고 그만둔 친구들도 많아요. 야구장 오기 전까지 하루 3~4시간. 경기 없는 날은 출근해서 5~6시간 연습하죠. 선수보다 활동시간은 많을 걸요. 노 : 예전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죠. '딴따라'나 '짧은 옷 입고 응원하는 언니'라고 생각하고, 왜 야구장에 있느냐고도 했어요. 지금은 연예인 같은 위치죠. 키 크고 춤 잘 추는 친구들이 와요. 이 : 감사하게 광고도 찍고, 방송에 나갈 기회도 생겼어요. (박)기량 언니처럼 선배들의 노력 덕택에 후배들에게도 좋은 길이 열린 것 같아서 좋은 것 같아요. -'치어리더 삼대장(박기량·김연정·이수진)'으로도 불리는데요. 이 : 옛날 얘기입니다(웃음). 사실 기분이 좋긴 한데, 부담스럽죠. 동생들이 '언니 삼대장이잖아요'라고 놀릴 때가 많아요. 노 : 저는 정말 좋았어요. 그전엔 삼성 치어리더는 'SSAT(삼성그룹 채용시험) 보고 뽑느냐'는 농담도 있었잖아요. 아무래도 지방 팀이라 관심을 덜 받기도 했구요. 삼성에도 이런 치어리더가 나와서 뿌듯했죠. -야구 뿐 아니라 농구, 배구, 축구장에서도 일하죠. 노 : 경기장마다 장단점이 있어요. 농구는 실내라는 점이 좋긴 한데, 경기에 집중해야 해요. 야구장이 사실 제일 힘들죠. 더울 때도 있으니까. 그래도 팬들이 바로 앞에 있어 좋아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노 : 경기장뿐 아니라 행사가 큰 수입원이에요. 여름 시즌엔 체육대회나 축제도 많이 가죠. 그런데 2년 동안 못 했어요. 한동안은 야구장에서도 일을 못 해서 회사 수익이 줄어들었어요. 단상에 서는 인원도 줄었죠. 이 : 원정도 못 가니까 (일당제이기 때문에) 수입이 줄었어요. 육성 응원도 아직 안 되고요. 마스크 속 표정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아쉬워요. 그래도 장점도 있어요. 지난해엔 랜선응원을 하면서 팬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실시간 댓글로 확인했죠. 인터넷 방송이나 부업을 하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오히려 자기가 뭘 잘할 수 있는지 찾은 친구들도 있죠. -치어리더를 꿈꾸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이 : 환상을 가질 수도 있는데, '프로의식'이 필요해요. 재능도 있고, 잘하는데 힘들어서 그만두거나 노력이 부족한 친구들이 있어요. 자기관리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구=김효경 기자 2021.09.24 06:30
연예

[리뷰IS] '비행소녀' 박기량, 24시간 모자란 삶…목표의식 빛났다

박기량의 하루는 24시간이 모자랐다. 빠듯한 스케줄 속 차에서의 쪽잠은 기본이고 시골에 있는 모텔에서 홀로 잘 때도 많았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목표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었다. 23일 방송된 MBN '비행소녀'에는 박기량의 일상이 담겼다. 1991년생인 그는 최연소 비행소녀 멤버이자 첫 90년대생 비행소녀로서 어떠한 일상을 보여줄지 궁금증을 높였다. 박기량은 "현재 삶에 만족하며 즐기고 있다. 현재 위치에서 나아가야 할 부분도 많지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현재 야구뿐 아니라 농구, 배구, 축구 경기에서 치어리딩을 하고 있는 박기량. 남은 시간은 후배들과의 안무 연습, 음악 작업에 시간을 할애했고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쇼핑몰 CEO로서 사업에도 열을 쏟고 있었다. 전국 구석구석을 다녔다. 일주일 주행거리가 3500km였던 적이 있을 정도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다. 부산에 집이 있지만 집에 갈 수 없었다.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근처 모텔이나 차 안에서 잘 때가 많았다. 짠한 모습이었다.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까지 쉽지 않았다. 이전보다 치어리더에 대한 처후가 나아졌지만 아직 열악했다. 갈 길이 멀었다. 박기량은 "못 벌면 한 달에 수입이 100만 원도 안 된다. 치어리더 활동만으로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후배들이 월급을 받게 해주고 싶다. 치어리더들의 환경이 좋아지고 있지만, 그렇게 크게 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면서 후배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1세대 치어리더이자 16명의 후배들을 이끄는 팀장 박기량은 꼼꼼하면서도 털털한 모습의 리더였다. 후배들에 대한 각별한 마음까지 담고 있어 따뜻함이 묻어났다.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tbc.co.kr 2018.04.24 07:45
야구

야구장 잠시 떠난 강윤이 "인터넷 방송에서 만나요"

지난해 SK 치어리더로 활약한 강윤이(26)는 올해 그라운드를 잠시 떠났다. 고질적인 발목 통증 때문에 치어리딩은 물론 일상 생활도 어려운 지경이 됐다. 응원단에 사정을 설명하고 휴식기를 갖기로 결정했다.강윤이는 재활을 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강윤이와 아재들'의 고정 멤버로 합류했다. 지인의 소개로 자신을 캐스팅하고 싶어하는 관계자를 만났고, 심사숙고 끝에 방송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강윤이는 "치어리더 일 이외에 처음 하는 외부 활동"이라며 "기대가 됐지만, 걱정도 컸다. 팬들께서 좋지 않게 여길까봐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강윤이는 박기량·김연정과 함께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치어리더로 꼽힌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7년 치어리딩을 시작한 그는 농구와 배구를 거쳐 LG의 치어리더로 인지도를 쌓았다. 그런데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2014년 겨울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9년을 쉼없이 달려오면서 발목에 무리가 왔고, 두 번째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은퇴를 선언하면 마음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허무함이 느껴졌다. 병원에 있으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치어리딩을 하는 꿈까지 꿨다.복귀를 고민하던 강윤이에게 10년 지기 친구 오지연(SK 치어리더 팀장)이 손을 내밀었다. 오 팀장은 10년 전 강윤이를 치어리더 세계로 이끈 인연이 있다. 강윤이는 "복귀를 결정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라운드에 다시 선다는 설렘이 들었지만, 걱정도 많았다. SK 팬분들께서 환영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그러나 이번에도 발목이 버텨주지 못했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통증이 심해졌다. 병원은 "100% 회복은 어렵다.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강윤이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치료에 매진하기로 결정했다. 응원단을 떠났지만, 팬들과 소통을 위해 인터넷 방송 참여를 결정했다. 강윤이는 "10년 넘에 춤과 움직임으로 팬과 소통을 했다. 이제는 춤을 추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로 팬과 소통을 하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다.강윤이는 방송을 통해 치어리더 시절 겪은 다양한 경험을 전하고 있다. 지금도 변치않은 LG팬들의 관심에 놀라움과 감사함을 전했다. 강윤이는 "방송이 나가고 난 뒤 LG 팬들께서 많은 댓글을 달아주셨다. 걱정과 달리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이어 "아직도 방송은 어색하다. 녹음을 한 뒤 내 목소리를 들으면 부끄러워서 닭살이 돋는다. 익숙해 지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며 웃었다.강윤이는 야구장 복귀를 꿈꾸고 있다. 지금도 많은 치어리더 지망생이 강윤이에게 치어리더 입문을 의뢰한다. 강윤이는 그들에게 '냉철함'을 요구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팬들의 시선과 지위가 크게 향상된 건 맞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아직 힘든 환경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 모두 요구 된다. 야구와 춤, 노래를 사랑한다면 자격은 충분하다. 본인의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유병민 기자 2016.06.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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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잠시 떠난 강윤이 “인터넷 방송에서 만나요”

지난해 SK 치어리더로 활약한 강윤이(26)는 올해 그라운드를 잠시 떠났다. 고질적인 발목 통증 때문에 치어리딩은 물론 일상 생활도 어려운 지경이 됐다. 응원단에 사정을 설명하고 휴식기를 갖기로 결정했다.강윤이는 재활을 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강윤이와 아재들'의 고정 멤버로 합류했다. 지인의 소개로 자신을 캐스팅하고 싶어하는 관계자를 만났고, 심사숙고 끝에 방송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강윤이는 "치어리더 일 이외에 처음 하는 외부 활동"이라며 "기대가 됐지만, 걱정도 컸다. 팬들께서 좋지 않게 여길까봐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강윤이는 박기량·김연정과 함께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치어리더로 꼽힌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7년 치어리딩을 시작한 그는 농구와 배구를 거쳐 LG의 치어리더로 인지도를 쌓았다. 그런데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2014년 겨울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9년을 쉼없이 달려오면서 발목에 무리가 왔고, 두 번째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은퇴를 선언하면 마음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허무함이 느껴졌다. 병원에 있으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치어리딩을 하는 꿈까지 꿨다. 복귀를 고민하던 강윤이에게 10년 지기 친구 오지연(SK 치어리더 팀장)이 손을 내밀었다. 오 팀장은 10년 전 강윤이를 치어리더 세계로 이끈 인연이 있다. 강윤이는 "복귀를 결정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라운드에 다시 선다는 설렘이 들었지만, 걱정도 많았다. SK 팬분들께서 환영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그러나 이번에도 발목이 버텨주지 못했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통증이 심해졌다. 병원은 "100% 회복은 어렵다.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강윤이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치료에 매진하기로 결정했다. 응원단을 떠났지만, 팬들과 소통을 위해 인터넷 방송 참여를 결정했다. 강윤이는 "10년 넘에 춤과 움직임으로 팬과 소통을 했다. 이제는 춤을 추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로 팬과 소통을 하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다.강윤이는 방송을 통해 치어리더 시절 겪은 다양한 경험을 전하고 있다. 지금도 변치않은 LG팬들의 관심에 놀라움과 감사함을 전했다. 강윤이는 "방송이 나가고 난 뒤 LG 팬들께서 많은 댓글을 달아주셨다. 걱정과 달리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방송은 어색하다. 녹음을 한 뒤 내 목소리를 들으면 부끄러워서 닭살이 돋는다. 익숙해 지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며 웃었다. 강윤이는 야구장 복귀를 꿈꾸고 있다. 지금도 많은 치어리더 지망생이 강윤이에게 치어리더 입문을 의뢰한다. 강윤이는 그들에게 '냉철함'을 요구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팬들의 시선과 지위가 크게 향상된 건 맞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아직 힘든 환경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 모두 요구 된다. 야구와 춤, 노래를 사랑한다면 자격은 충분하다. 본인의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유병민 기자 2016.06.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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